아이디어를 기회로 만드는 용기, 임수민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일반적인 궤도를 벗어나 스스로 영역을 넓혀가는 이 시대의 오디티들 이야기 '오디티 토크'. 지난 3월 27일, CGV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에서 열린 일곱 번째 오디티 토크는 최근 혼자 기획하고 촬영, 편집한 다큐멘터리 <뉴 솔트(New salt)>를 공개한 임수민 스트리트 포토그래퍼와 함께했습니다. ‘아이디어쟁이가 기회를 만드는 방법’이라는 주제의 토크와 1시간 남짓의 ‘다큐멘터리 상영회’를 위해 준비한 100석의 자리가 단 하루 만에 매진될 만큼 뜨거웠던 그 날의 이야기를 글로나마 전해드립니다.

* 지난 글 '영감을 주는 것들'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임수민 편]에 이은 오디티 토크의 후기 포스팅입니다


스트리트 포토그래퍼가 뭐예요?

안녕하세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임수민입니다. 제가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라고 소개하면 사람들이 굉장히 생소하다고 하더라고요. 포토그래퍼면 포토그래퍼고, 패션 포토그래퍼면 패션 포토그래퍼지 스트리트 포토그래퍼가 뭐냐는 거죠. 그래서 제 다큐멘터리를 보여 드리기 전에 설명해드리려고 사진 몇 장을 가져왔어요.

Photo by Soomin Yim

Photo by Soomin Yim

저는 말 그대로 길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양복을 입고 해변에서 아재 놀이를 하는 아저씨들을 찍거나, 콘서트에서 불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어린아이의 사진을 찍거나, 이렇게 아이와 눈을 맞춘 사진을 찍을 때도 있어요.

Photo by Soomin Yim

Photo by Soomin Yim

한국에서도 사진을 찍어요. 부산에서 찍기도 하고 이태원에서도 찍고요. 근데 사진을 보고 다들 교과서에서 나온 사진인 줄 알더라고요. 현존하는 인물들이고요. 불과 3~4년 전에 찍은 사진이에요. 흑백으로 하니까 되게 달라 보이죠?


사진 어떻게 읽어요?

사진을 보는 데에는 굉장히 다양한 방법이 있더라고요. 그중 저한테 가장 와닿았던 방법이 하나 있었어요. 그게 뭐냐면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라고 1800년대에 나온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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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가 처음 발명됐을 때 사람들은 멘붕이 왔다고 해요. 옛날에는 거울을 통해서 움직이는 내 얼굴을 보거나 정말 정밀한 그림을 통해서 봤는데 사진을 보고 나니까 ‘나는 늙어서 죽고 사라지는데 이건 평생 남아 있잖아. 그럼 이게 진짜고 내가 가짜인가?’ 이런 멘붕이 온 거죠. 무슨 사진 촬영 하나 가지고 저렇게 오바를 할까 하지만 상상해보세요. 그런 게 아무것도 없던 시절에는 이게 망측할 정도로 무서웠을 것 같더라고요.

그런 사람들에게 “사진 무서운 거 아니야 괜찮아”라고 한 철학자가 쓴 글이 <카메라 루시다>예요. 이 책을 쓴 사람이 이렇게 얘기했어요. 사진을 보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스튜디엄(Studium)’과 ‘펑크텀(Punctum)’. 스튜디엄이 뭐냐면요. 사진을 볼 때 어떠한 사진의 사회적인 맥락을 보는 거예요. ‘아, 이 사진은 가난한 사람들을 찍은 사진이구나. 마음이 아프다. 빨리 해결돼야 할텐데’. 그리고 펑크텀은 뭔지 모르게 나한테 콕콕 쑤시는 작은 디테일을 얘기하는 거예요.

Photo by Soomin Yim

Photo by Soomin Yim

제가 우사단이라는 이태원 뒤에 있는 마을에서 작업할 때였어요. 어떤 할머니 집에 가서 사진을 찍는데 커피 타주시는 모습 뒤로 빤스가 너무 웃긴 거예요. 할머니가 이렇게 마르셨는데 와이어 행거에 빤스를 걸 정도면 힙이 킴카다시안만하다는 거거든요. 처녀들의 빤스는 저렇게 늘어나지 않는데 저걸 보니 할머니 생각이 나서 웃으며 찍었죠. 물론 할머니한테 왜 남의 빤스 사진을 찍냐고 욕을 바가지로 먹었어요.  

이후에 전시회를 할 때 이 사진을 전시했어요. 그런데 어떤 분이 이 앞에서 눈물을 흘리시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이 빤스가 웃겨서 찍은 건데 당신은 왜 울고 있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빤스가 있는지도 몰랐대요. 그제야 웃으시곤 왜 울었는지 이야기해 주셨는데요. 이 찻잔이 자기 할머니가 쓰시던 거래요. 할머니 손에서 자랐는데 어느 날 뛰어놀다가 저걸 깨트린 거예요. 마지막 남은 찻잔이라서 할머니한테 혼이 났대요. 그래서 저걸 찾아드리려고 찾고 찾고 또 찾아도 못 찾았대요. 아마 요새는 이런 걸 안 쓰나 봐요. 그런데 할머니가 최근에 돌아가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걸 보면서 할머니 생각이 너무 났대요.

펑크텀은 이렇게 개인적인 관계예요. 재밌는건 펑크텀이 사람마다 다르고요. 저는 이게 사진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이 사진에서 뭘 느껴야 하지? 하는 강박 없이 그냥 내가 눈이 딱 가는게 그 사진의 메시지라고 생각하거든요.

by Soomin Y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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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 다큐멘터리를 보실 때 ‘펑크텀’을 많이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이 다큐멘터리는 제가 갑자기 항해하게 된 이야기인데요. 제가 담고 싶었던 건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느끼는 고민, 외로움, 좌절감을 어떠한 한 사람은 이렇게 견뎌냈다. 그리고 당신은 그걸 어떻게 견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어떤 분들은 요트만 보시고 “우와, 너무 멋있어요”, “박탈감 느껴요” 이런 얘기만 하시더라고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제 작품을 보고, 제가 의도치 않았던 것을 여러분이 느껴주시고 그것을 통해 여러분이 무언가를 해보는 것, 그게 저의 가장 큰 목표인 것 같아요.

제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뉴 솔트>입니다. 제가 직접 제작하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허술하지만 애니메이팅까지 한 저한테는 굉장히 소중한 다큐멘터리에요. 여러분도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 이번 글에서는 <뉴 솔트>의 공식 예고편만 소개합니다. 더 많은 영상은 임수민 작가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해주세요. :)


아이디어는 기회로 어떻게 만들어요?

다큐멘터리를 발표하고 나서 사람들이 제일 많이 했던 말 중 하나는 “좋겠다. 부모님이 다 해주셔서” 였어요. 저 이거 처음 했을 때 부모님 허락도 못 받고 갔었거든요. 그리고 또 많이 들었던 질문은 “생각보다 사진으로 돈 많이 버나 봐요” 였어요. 사실 제가 돈이 없어요. 이게 제 돈으로 산 게 아니에요. 요트 가격이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저는 모든 금액을 후원받았어요. 그런데 이게 어떤 브랜드에서 먼저 “이거 해볼래?” 한 게 아니에요. 당연하잖아요. 저를 어떻게 알고, 제가 뭘 하고 싶은지 알고 그랬겠어요.

다큐멘터리에서도 말했지만 내가 배를 사서 선장이 되지 않는 한 이 슬럼프를 이겨낼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내 마음이 그러니까 엄청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반스 코리아, 아디다스 코리아 인스타그램에 대뜸 DM을 보냈어요. “저 스트리트 포토그래퍼 임수민인데요.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할 건데 혹시 기획서를 보낼 이메일 주소 알려주 시겠어요?” 사실 계정에 들어가면 이메일 다 나와 있어요. 그런데 그거 보내면 안 읽을 것 같아서 직접 두드려 본 거죠. 그렇게 하면 제 프로필을 보잖아요. 어느 정도 팔로워가 있고 활동을 어떻게 했다는 게 검증이 되니까 답을 주더라고요. 물론 답을 안 주는 데도 있었어요. 제가 거짓말 안 하고 한 오십 개 정도의 브랜드에 연락했거든요? 그리고 열 개 정도의 브랜드에서 답이 왔고 그중에서 다섯 개와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by Soomin Y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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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이런 걸 해본 적도 없고 누가 이렇게 하면 되더라고 말해준 것도 아니었고 그냥 단 한 가지, 왜 내가 아니면 안 되냐는 것이었어요. 왜 우리 인스타그램을 보면 인플루언서라고 브랜드 후원을 받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왜 나라고 그걸 못할까 그리고 내가 하려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메시지를 주기에 좋겠다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이 생각을 가지고 ‘네고’ 했어요. 왜 우리 중고나라에서 이런 말 하잖아요. “네고해주세요” 그렇게 브랜드들과 협상하기 시작한 거예요. 나는 이렇게 하고 싶으니까 이만큼을 달라. 그런데 대부분이 제가 말한 금액을 주지 않았어요. 저는 3억원을 원했거든요. 말이 안 되는 소리죠. 그렇게 한두 번 이야기가 오고 가니까 현실 안이 생기더라고요. ‘브랜드들이 잔고를 얼마큼 가지고 있구나! 그래서 얼마큼을 달라고 해야 하는 구나!’ 그런 것들이요. 최근에는 이런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기획서 쓰는 방법을 온라인 플랫폼에서 보고서로 만들었어요. 이렇게 저는 기획서를 써서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어요.

올해는 기획서를 조금 바꿔서 일반인분들과 제 요트를 타고 항해하려 해요. 면접을 통해 함께할 사람을 뽑아 제주도를 한 바퀴 돌고 올 거예요. 곧 공지를 띄울 테니까 영상을 보고 궁금해지셨다면 지원해주세요.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뭐예요?

by Soomin Y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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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은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로 일하면서 입었던 스타일이에요. 그리고 제가 항해하면서 입었던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잖아요.

스트리트 포토그래퍼가 막 됐을 때 옷을 좀 스트리트하게 입고 다니니까 정장만 입고 다녔을 때의 저를 보던 사람들은 “너 힙쟁이냐? 너 또 이러다 말 거잖아” 그러는 거예요. 창피했지만 꿋꿋하게 입고 다녔어요. 그러고 나니 저절로 저렇게 입어지더라고요. 그런데 이때랑 또 지금이랑 되게 달라요. 요즘은 약간 크리에이터라고 해야 할까요? 스티브 잡스 처럼 단벌룩으로 스마트하게, 붙게 입고 다녀요. 우습게 들릴 수도 있지만, 굉장히 중요해요. 내가 무언가에 마음이 향했을 때 그것을 얼마만큼 일상 속에서 생각할 수 있고 행할 수 있는지를 연습하는 건 굉장히 중요한 것 같거든요. 물론 옷만 이렇게 입고 다니면 안 되겠죠.

해드리고 싶었던 말이 매우 많지만 마무리를 하자면 전공도 아니고 내 일과는 관련이 없는 무언가를 처음 행할 때 진짜 쑥스러워요. 왜냐하면 “갑자기 그거 해서 뭐 하려고?”, “너 취미인데 되게 열심히 한다. 무슨 일주일에 수업을 다섯 번이나 가?” 다 듣지 마세요! 진짜 들으면 안 돼요. 정말 내가 무언가를 향할 때는 내 마음을 전부 열어두고 내 귀는 완전히 닫아야 하더라고요. 그게 좋으면 그냥 한 번 흠뻑 빠져야 하더라고요.


Q&A

Q. 작가님 인스타를 보니 거리 인물 사진들이 많은데요. 그들의 사진을 찍기 위해 어떻게 다가가시는지? 어떤 말을 걸면서 사진을 찍으시는지 ‘용기 있는 대화법’이 궁금해요

A.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를 꿈꾸는 사람들이 저에게 굉장히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에요. 저는 거의 100% 안 물어보고 찍거든요? 근데 절대 도촬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제 카메라는 아날로그 카메라라서 줌이 없어요. 그래서 발줌이라고 하는데 다가간 만큼 가까워지기 때문에 가까워져야 해요. 그러면 제가 찍고 있는 걸 보잖아요. 그래서 머리를 잡힌 적도 있고 굉장히 위험해진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런 마찰을 통해 어떻게 내 편으로 만드냐가 진짜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라고 생각해서 물어보지 않고 자연스럽게 찍고 화를 냈을 때 내가 설득할 수 있으면 그 사진을 쓸 수 있는 거고 만약에 정말 끝까지 싫다고 하면 꼭 쓰지 않아요. 그건 맹세하고 절대요. 그런데 또 어떤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는 굉장히 잘 다가가서 물어보면서 하시더라고요. 이건 정말 성향 차이인 것 같아요.

Q. 사진 자체도 인상적이었지만 사진에 대한 해석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뵙고 싶었습니다. 사진에 대한 해석을 보면 세상을 보는 눈이 따뜻하신 분이란 생각이 들던데, 찍을 때 스토리가 떠오르시나요. 아니면 현상하고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찾는 과정에서 스토리를 만드시나요?

A. 저는 일차적으로 제가 찍고 싶은 것만 찍어요. 그래서 제가 세상에서 제일 못하는 게 돈 받고 사진 찍는 거예요. 진짜 아이러니하지 않아요? 사진이 직업인데 돈을 받고 찍으면 진짜 못 찍어요. 대신 찍고 싶은 걸 찍으면 정말 잘 찍어요. 제가 길에서 사진 찍을 때 막 위험한데도 그걸 안 누르고 못 버티는 성격이에요. 그리고 그걸 찍는 순간이 아까 말씀드린 펑크텀이라는 순간이 떠오를 때에요. 사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펑크텀의 세기는 달라져요. 그래서 찍을 때는 셌는데 현상할 때는 제가 그걸 잘 못 담았거나 생각보다 그 사람이 그렇지 않았거나 하는 순간들이 있어요. 그 반대로 그림자만 찍었는데 막 펑크텀의 핵폭탄인 경우도 있죠.

Q. 퇴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작가님의 전시를 보고 위로를 받았던 한사람으로서 이번 상영회를 보면서도 새로운 도전에 대한 용기를 얻고 싶습니다. 현실적이지만 따뜻한 조언 부탁드려요

A. 퇴사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너 고작 이거 하려고 퇴사한 거야?” 하는 사람이요. 귀담아 듣지 마세요. 오프라 윈프리가 했던 말 중에 마음에 와닿았던 말이 있어요. ‘Surround yourself with only people who are going to lift you higher.’ 그러니까 나를 끌어 올려줄 사람을 내 곁에 두지 나를 끌어내릴 사람을 곁에 두지 말라는 거예요. 이 세상에 인구 너무 많아요. 진짜 너무 많아요. 근데 굳이 나를 끌어내리는 사람을 주변에 둘 필요는 없다는 거죠. 그러면 꿈을 더 잘 좇게 되더라고요.

Q. 브랜드와 협업할 때  인스타 팔로워가 몇명이었나요?

A. 처음 협업했을 때는 그렇게 많지도 적지도 않은 4000~5000명 정도였어요. 지금은 8000명 정도고요. 브랜드들이랑 협업을 많이 해보며 느낀 건 오히려 팔로워가 너무 많으면 샀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아니면 너무 인플루언서 느낌이 나서 진정성이 없다고 생각해 안 좋아하는 브랜드도 있고요. 제 생각에는 팔로워 수보다 콘텐츠가 중요한 것 같아요. 작업 사진도 있고 어떤 자기 인증도 있고 라이프 스타일도 보이면 좋겠죠. 인플루언서와 크리에이터의 차이는 브랜드가 먼저 똑똑했을 때 받아들이는 사람과 똑똑하고 먼저 브랜드를 두들길 수 있을 만한 콘텐츠와 아이덴티티, 용기가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Q. 브랜드에 제안서를 보낼 때의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제안하실 때 어떤 포인트를 가장 강조하셨나요?

A. 제가 브랜드를 꼽는 기준은 브랜드의 인스타그램을 봤을 때 그 브랜드의 취지가 저와 맞느냐였어요. 그리고 제안할 때는 나랑 협업했을 때 그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어떻게 딱 맞고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지를 포인트로 잡았어요. 그런데 좋아하는 브랜드랑 해야 자연스럽게 나오더라고요.

Q. 여행도 바다도 좋아서 3년 동안 여행을 했는데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다시 한국 사회에 진입하고 나니 서른셋이 됐고 다시 큰 도전을 하는 게 엄청 무서워졌더라고요. 한마디 해주세요

A.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요. 정말로. 제가 생각했을 때 도전은 나이가 아니라 상태인 것 같아요. 저는 3년 전에 도전하는 게 더 무서웠거든요. 왜냐하면 그때는 사진이라는 걸 처음 막 시작할 때였고 자리를 잡고 있는데 또 새로운 걸 하자니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것도 질리고 이것도 질리는 건 아닐까? 그러면 그나마 좀 재미있는 사진이라도 좀 징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제가 좋아하는 말 중 하나는 니나 시몬이 한 말이에요. ‘자유는 두려워하지 않는 게 자유’라고요. 이런 말이겠죠? 자유는 나이, 상대방이 주는 어감, 부모님이 주는 기대라기보다 내가 나에게 만드는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것으로부터 조금 자유로워 졌으면 좋겠어요. 여행을 많이 다니셨으면 엄청 지루한 일을 해보면 어떨까요? 저는 항상 극과 극에 저 자신을 놓아 버리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그런 걸 극복한달까요. 이태원 한복판이 너무 시끄러워 태평양에 갔다가 태평양 한복판에서 또 다른 곳으로 가는… 그렇게 자기 자신의 마음이 가는 곳에 자신을 놓아줘야 하는 것 같아요.

Q. 영화 중간에 “항해 전에 해야 할 일이 참 많았다"는 내레이션에 마스카라 하는 장면을 쓰셨는데요.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이유가 있나요?

A. 진짜 질문 좋네요. 왜냐하면 그게 웃긴 포인트였는데 아무도 웃지를 않았어요. 그런데 런던 상영회에서는 다 웃었거든요. 영어로 들어서 그런가 봐요.

다큐멘터리에서 준비할 게 너무 많았다고 하면 다들 항해적인 것을 생각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갑자기 이러고 있는 게 웃음 포인트이기도 하면서 첫 번째 망했던 항해 때 느꼈던 게 제 여성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거예요. 남자들이랑만 타기도 했고 뭔가 ‘강해져야겠다. 무언가를 하려면 강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여성스러우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돌아와서 보니까 그건 정말 아니더라고요. 충분히 나의 여성성도 나의 강인함과 같이 밸런스를 맞추며 할 수 있는데 내가 왜 그걸 잃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험하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것 같아요. 모험하는 여자는 땀 냄새가 날 것 같고 발 냄새가 날 것 같고, 굳은살 엄청 많을 것 같고 그런데 우리 그렇지 않거든요. 그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by Soomin Y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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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앞으로의 계획이랑 꿈은 뭔지 궁금해요.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이렇게 유명해지고 다양한 기회가 찾아올지 예상했나요? 항해 이후 책 출판, 상영회 같은 기회는 어떻게 만들어냈나요?

A. 저 그렇게 유명하지 않아요. 앞으로의 계획은 아까도 얘기했듯 제주도를 갈 예정이에요. 외국에 요트를 사는 사람들을 보면 진짜 멋있어요. 그리고 우리나라 젊은 사람 중에도 요트를 스포츠로 생각하고 자연을 생각하는 태도가 멋진 사람이 많아요. 저랑 함께 항해했던 채는 세일러인데 채는 제 롤 모델이거든요. ‘저런 항해사가 되고 싶다’, ‘우리나라에 좀 더 저런 젊은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채처럼 겸손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일반인 분들도 함께 느끼셨으면 해서 더 많이 태우고 싶어요. 이게 제 계획이고요.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는 더 유명해지기를 바랐는데 그렇게 유명해지지 않았어요. 상영회는 제 주변 아는 분들을 통해서 했는데 기획서가 굉장히 중요하더라고요.

책 출판은 너무 신기했는데요. 제가 처음 망했던 항해를 하고 와서 실패한 뭔가에 대한 얘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책을 쓰기 전에 진짜 고민 많이 했거든요. 어떻게 하면 이 경험들을 잘 살릴 수 있을까 하고요.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고요. 자서전 같은 거 보면 다 성공한 사람들이잖아요. 아니면 막 그래요. “실패해도 괜찮아." 뭐가 괜찮아요. 막 예쁜 일러스트 쓰면 다예요? 안 그런 거 같은 거예요. 그래서 저는 우울함 그 자체를 썼어요. 약간 귀여운 그림들로요. 왜냐하면 저 자신이 마냥 우울하기는 또 힘들더라고요. 책을 쓰면서 위로를 많이 받았는데요. 감사했던 건 ‘아 책을 써야겠다. 그런데 출판사 또 어떻게 알아보냐. 기획서를 또 써야겠네?’ 하는 차에 연락이 왔다는 거예요. ‘<세바시> 강연을 봤는데 같이 책 한 번 쓰면 어떨까요?’ 하고요. 사실 <세바시> 때 너무 하기 싫었는데요. 지금은 하기를 잘했다 생각해요.

Q. 지금까지 다큐를 찍고 사진을 하고 또는 다른 하시는 일을 하면서 불안했던 적은 없으신가요? 그럴 때 불안을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A. 저 굉장히 불안해요. 저 사실 지금도 불안해요. 아니 사실 그거는 거짓말이에요. 지금은 불안하지 않아요. 사랑으로 직결되는데 제가 사랑을 찾기 전에는 굉장히 불안해 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제 모든 이유가 사랑을 찾기 위한 것 같았거든요. 사람을 만나러 다니는 것도 ‘이중 내 사랑이 있지 않을까?’인 것 같고 사진을 찍는 것도 위안을 받고 싶어서 인 것 같고요. 근데 채를 만나고 사랑을 하고 외로움이 덜 하니까 한동안은 저의 예술혼이 사라졌어요. 그래서 그것때문에 불안했는데 ‘뭐 어때 사랑이 있는데’ 그랬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정신을 좀 차려서 조절을 잘 할 수 있게 됐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다 불안한 것 같아요. 요새 SNS의 폐해라고 생각하는데요. 모두가 행복하고 멋있는 척을 해야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인터뷰때마다 제 불안함을 굉장히 얘기하고 노출하는 편이에요. 그냥 이것만 기억하세요. 모두가 불안해요. 그리고 죽을 때까지 불안하더라고요. 제가 다양한 연령대, 위치의 분들을 만나봤는데 다들 불안해요. 돈이 많아도, 권력이 많아도, 자신이 하고 싶은 예술적인 무언가를 하는 사람도 다 불안해요. 불안함을 즐기는 자를 이기는 자는 없을 것 같아요.

Q. 처음에는 낯설지만, 점점 익숙해지면서 old salt가 된다고 생각해서 마지막 메시지가 너무 많이 와 닿았습니다. 그 낯섦과 새로움을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A. 겸손함인 것 같아요! 내가 조금 잘한다고, 내가 좀 발전했다고, 혹은 엄청나게 잘 한다고, 대단히 발전했다고, 내가 무언가 되는 양 행동하는 사람은 오래가지 못하는 것 같아요. 내가 잘한 점보다는 내가 부족한 점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계속 보는 사람이 뉴 솔트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게 굉장히 두렵고 지치는 일이거든요!


Q. 배가 뒤집힐 때를 위해 대비한 게 있나요?

A. 계속 바람의 방향을 지켜봐야 해요! 인생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작은 조짐도 미리 대비하면 큰일이 없는 것처럼, 대충대충 작은 것들을 흘려보내다 보면 인생 한 방에 훅 가버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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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마지막에 혼자서 항해를 하셨는데 그걸 하기 전과 후가 어떻게 변했나요? 작가님은 이제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신가요?

A. 진짜 달라졌어요. 여러분도 보면서 느끼지 않으셨나요? 제가 처음에는 진짜 못하잖아요. 움직임도 둔하고 표정도 안 좋고. 그러다가 점점 더 웃고 더 노련해지고 빨라지잖아요. 지금 보면서도 ‘와, 진짜 많이 성장했다’ 느껴요. 그런데 제가 혼자 항해하지 않았으면 절대 늘지 않았을 거예요. 저 다큐멘터리에서도 얘기했듯 한 번이라도 완벽하게 혼자 해보니까 알겠어요. ‘아, 옛날에 그래서 이랬구나’, ‘아, 이게 이래서 필요했던 거구나’. 그런데 누군가 지켜봐 주는 존재가 있다면 그게 자각이 안 되더라고요. 배를 탈 때는 감히 전화할 틈이 없어요. 눈 깜빡하는 사이에 배가 뒤집힐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혼자 하다 보니까 해결책을 찾아가다 보니까 이해를 할 수 있더라고요.  

다큐멘터리를 만들 때도 맡길 수 있었지만,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혼자 해보고 싶었어요. 이번 다큐멘터리가 끝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고, 뭔가 계속 영상 작업을 할 수도 있는 거고 더 다양한 작업을 할 텐데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달까요. 그래서 혼자 해봤더니 도전하는 것에 대한 문턱이 좀 낮아졌어요. 두려움이 없지는 않아요. 걱정이 많은 편이라서요. 대신 턱이 낮아지고 겸손함은 더 높아졌죠. 그리고 ‘이렇게 어렵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하지 않고, 그래서 이걸 한 사람들이 대단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용기를 내기 위한 꿀팁! 인생 좌우명은요?

A. 해방시대 때 자유를 그린 이쾌대 화가의 말 ‘KPR 나의 할 일은 이것, 어떤 장애물이 와도 오직 그길 뿐이’. 이 말이 너무 와닿고 마음에 울려요! 이런 마음가짐으로 모든 것을 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오디티 토크를 통해 저는 용기와 도전의 아이콘을 만난 느낌이었어요. 넘치는 아이디어로 끊임없이 도전하는 임수민 작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기회로 만드는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앞으로도 임수민 작가의 용감한 도전을 기대하며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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